3학년 봄 소풍은 비가 많이 왔습니다. 우리는 교실과 복도에(?)에 늘어 앉아 도시락과 마실것들을 먹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강당터 가 공동묘지라서 소풍갈 때나 운동회에 비가 온다고했든가????
멀리 계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고모님이 쑤루메도 싸주시고,, 동무들에게 자랑하고 먹고 싶었는데,,,비오면
생각 나지요.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청소는 만점이요,
이젠 집에 돌아가도 좋소,,
어느새 선생님이 뒤에와 웃고 계셨습니다,,,, 3학년 1학기 국어책 27쪽쯤,,,
28쪽(오른쪽 페이지??)에는 천정에서 비가세서 마루에 바께쓰 바쳐두고 , 빗자루 들고
서있는 남학생의 그림이,,,,,
해남동교(48회)에서의 13살이전의 생활과 사건이 나를 밀고 당기어 또다른 방향으로 가게합니다.
6학년 ,이해중 선생님, 후덕하시고, 반에 풍금이 있었고,,, 나도 선생님의 신용을 좀 타서(이건 병호군의 기억인 단어임)
교육청에 서류전달(?)심부름을 갔는데 유리문을 열지 못하고 문고리만 잡고있을적에,,,안에서 문고리를
돌리고 잡아당기라는 것을 보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촌놈이었습니다.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는,,,,자의식(selfconsciousness)생기기 시작했나 봅니다
이 자의식을 죽이고(anti-selfconsciousness)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해병대를 자원입대(돈육천원쓰고)
했고 , 또 청룡부대도 지원하고,,,,
비오는 날,,,,, 학교에 우산을 갖다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에 우산도 없었구,,,, 할머니와 함께였든 국민학교때가
가장 어려웠던 때였나 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목포 집 마당에 있던 우물에 찬물 떠놓고 형과 내가 월남있을때
내내 손바닥 비비며 빌어 주셨고,,,, 할머니는 가셨지만 우리 지금 함께 웃을수 있구요,,,,
비 온다는 일기예보에 우산 가지고 외출하지 않음은 비오면 비 맞고,,,했던 이때의 버릇인가요????
우장-마다리 푸대나, 거름 푸대등의 뒤집어 쓰는 것도 변변치 않었슴에,,,,,,
청소를 위해 걸레 만들어 오라는 학기초 선생님의 지시사항은 여름방학 곤충채집 숙제 만큼이나 나를 쪼들리게
만들었구,,, 몇학년 때일까?? 연극에 귀신/마귀역활 그룹에 속해 빨간 티 셔츠 입고오랬는데 ,,, 입은 기억이
없구,,,,,,
의류 수출 부서에서 근무할때 많은 견본과 쌤플들을 나눠줌에 재미를(?) 붙임도
그때의 허접했슴에 있으리라,,,,,
전쟁이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라는데,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국민학교까지의 시골
생활과 가난함도, 나중에 잘될거라는 보장만 있다면 ,,,,,,,,,
가슴이 작은여자를 찾아 떠난 시간여행자(time traveller)의 겨울여행에 동무들이 함께해주니 이제 또 다른
추억이 나올려나,,,,임방울 선생이 부른 단가, "추억"을 음미해 봅니다.
2010,2,8. 사헌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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