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 시인 조은 (1960- )의 산문 같은 시를 접하니, 까마득하고, 알듯 모를 듯
해보이고, 난해했던 현대시도 손에 잡히는 듯 가깝고 좋다.
읽어 갈 수록 生을 뒤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고찰해(?) 가는,,,, 누가 읽어주기를 원하는 글이 아닌, 그러나 편하지만은
않은 글이다.
詩漢로 번역해보면,,,,, 좀더 살펴보고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쯤은 죽음을
조은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深慮死一下
開門禽鳥侵無妨 恰似情人入我房 間或隔窓呼且惑 走猖人世急唐荒
任其所往非加害 奔向四隅馳擊忙 提把團環猶佇立 但望脫獄瞬飛翔
自誇雙翼折飄落 臨被閉棺唯恐佯 貪慾圖生未得出 若何一慮死天殃
-------------------------------------------------------------
無妨 (무방) 거리낄 것이 없음
團環 (단환) 배목이 달려 있는 둥근 문고리
若何 (약하) 어떨까?
새 머리(대가리)로 어찌 죽음을 생각할 수 있으랴? 아니 사람도 어려운 일이다.
살아가는 것에만 몰두하지 죽음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기 죽음을 깨닫는 이는 몇이나 될까?
말썽부린 자식들과 세상을 시끄럽게 한 부인 때문에 속앓이 했을 재벌회장의
죽음에 이러저러 말들이 오간다.
그는 조금 더 누리다가(?) 갔을 뿐이다.
편안한 죽음은 아니었을 터인데,,,,,,,,,,
나는,,,,,,, ?????????
2019. 4,14. 思軒
'고희이후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孫子相逢別後十日,,,,( 손자와 헤어진 후 10일,,,,) (0) | 2019.06.10 |
---|---|
手編織情人 뜨개질하는 그대여...| (0) | 2019.05.06 |
送別子孫英國空港路上 ......영국으로 아들손자 보내고 공항로에서,| (0) | 2019.04.10 |
己亥之暮春賦 기해년 늦봄 어느 날에...| (0) | 2019.04.10 |
挽竹馬故友金德洙 옛 친구 김덕수를 애도하며. (0) | 201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