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당

[스크랩] 내 아들의 혼을 일깨우는 환타지 소설 `코리아 코드`의 구상 메모 - 귀촉도 6 / 이백의 촉도난蜀道難과 이백의 출신지

아우구스티노박 2011. 11. 16. 16:59

 

 

                     호탄(금릉) - 바미얀(함양, 장안) - 페샤와르(파촉, 발해, 성도)

 

 

 

 

 

蜀 道 難 - 李 白

 

 

 

 

噫 吁 戲,危 乎 高 哉 ! / 아이쿠 아찔하게 높고도 험하구나!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 / 촉으로의 길, 어려워라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

 

蠶 叢 及 魚 鳧,開 國 何 茫 然。/ 잠총과 어부가 촉나라를 개국한 지 얼마나 아득한가.

 

爾 來 四 萬 八 千 歲,/ 그로부터 4만 8천 년 동안

 

始 與 秦 塞 通 人 煙。/ 관중 땅 진(秦)과 내왕길이 없었고

 

西 當 太 白 有 鳥 道,/ 서쪽 태백산 새(鳥) 길 따라

 

可 以 橫 絕 峨 眉 巔。/ 겨우 아미산 올랐네.

 

地 崩 山 摧 壯 士 死,/ 미녀 맞은 촉 장사들 산 무너져 죽은 후로

 

然 後 天 梯 石 棧 方 鉤 連。/ 하늘 높다란 사다리 절벽에 매단 잔도만이 고리같이 길 대신 이어졌노라.

 

上 有 六 龍 回 日 之 高 標, /위로는 여섯 마리 용이 끌던 해 수레도 돌아섰던 높은 고표산

 

下 有 衝 波 逆 折 之 迴 川。/ 아래는 암석절벽 치는 물결과 엇꺾여 흐르는 억센 물흐름

 

黃 鶴 之 飛 尚 不 得,/ 신선 탔던 황학도 날아 넘지 못하고

 

猿 猱 欲 度 愁 攀 援。/ 원숭이 넘으려 해도 잡을 데가 있어야지!

 

青 泥 何 盤 盤,/ 청니령 까마득하게 높이 서리고

 

百 步 九 折 縈 巖 巒,/ 백걸음 아홉 번 꺾어, 돌바위 봉오리를 돌아야 하네

 

捫 參 歷 井 仰 脅 息,/ 하늘의 삼성별 어루만지고 정성별 지나니 숨이 막혀

 

以 手 撫 膺 坐 長 歎。/ 손으로 앞가슴 쓸며 주저 앉아 장탄식 몰아 내뿜네.

 

問 君 西 遊 何 時 還? / 그대 서촉 갔다가 언제 돌아오나?

 

畏 途 巉 巖 不 可 攀。 / 무서운 길 미끄러운 바위 오를 수 없고

 

但 見 悲 鳥 號 古 木,/ 오직 고목에 슬피우는 새들

 

雄 飛 雌 從 繞 林 間;/ 암놈 수놈 따라 날아돌고

 

又 聞 子 規 啼,夜 月 愁 空 山。/ 또한 두견 달밤에 울고 빈산을 슬퍼할 따름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 촉으로 가는 길 가기 어려워라.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

 

使 人 聽 此 凋 朱 顏。/ 그곳 말만 들어도 홍안소년 백발노인으로 시들고야

 

連 峰 去 天 不 盈 尺,/ 연봉은 하늘과 한자도 못 돼.

 

枯 松 倒 掛 倚 絕 壁。/ 메마른 소나무 절벽에 거꾸로 매달렸고

 

飛 湍 瀑 流 爭 喧 豗,/ 내닫는 여울과 튀는 폭포수 서로 다투어 소란 피우고

 

砯 崖 轉 石 萬 壑 雷。/ 벼랑을 치고 돌을 굴려 온 골짜기 우레 소리 울리네.

 

其 險 也 如 此!/ 이렇듯 험난하거늘

 

嗟 爾 遠 道 之 人,/ 그대 먼 길 따라 온 손이여.

 

胡 為 乎 來 哉? / 어이하다 왔단 말인가?

 

劍 閣 崢 嶸 而 崔 嵬,검각은 뾰죽뾰죽 높이 솟아

 

一 夫 當 關,萬 夫 莫 開;/ 한 사람이 관문 막으면 만 명이 뚫지 못하리.

 

所 守 或 匪 親,化 為 狼 與 豺,/ 지키는 이 일가친척 아니면 언제 이리 승냥이 될지 몰라

 

朝 避 猛 虎,夕 避 長 蛇,/ 아침에 모진 호랑이 피하고 밤에 긴 뱀을 피해도

 

磨 牙 吮 血,殺 人 如 麻。/ 이를 갈고 피를 빨아 미친 마귀처럼 사람 죽이네.

 

錦 城 雖 云 樂,不 如 早 還 家。/금성(錦都의 성)이 비록 좋다 하나 일찍 집으로 돌아감만 못하리.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촉으로 가는 길 어려워라.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

 

側 身 西 望 常 咨 嗟。/몸 추켜세워 서쪽 바라보며 길게 탄식할 뿐이로다.

 

 

 

 

촉도는 이 시로 보건대는 금도(진도 - 페샤와르) 가는 힌두쿠시산맥으로 난 길을 말하는 것같다.

 

 

 

 

 

 

 

 

이태수

 

놀랍습니다. 촉도는 분명히 파미르 산맥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야르칸드에서 파키스탄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이 위 촉도와 딱 맞습니다. " 하늘 높다란 사다리 절벽에 매단 잔도만이 고리같이 길 대신 이어졌노라." 09.02.27. 16:15

( - 바미얀에서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가는 길이 촉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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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환

이를 증명해보입시다요! 09.02.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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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헌석

'始 與 秦 塞 通 人 煙。/ 관중 땅 진(秦)과 내왕길이 없었고' - 한번 따져보지도 않고, '이태백'/장기근,명문당 P320의 번역을 올렸는데, 바른 번역은 '(잠총과 어부의 촉의 개국으로) 비로소 진나라 요새가 (잔도를 걸고 길을 뚫어) 사람이 다니게 되고, 인가가 생겼다'가 되겠다. 이 문장의 함의는 촉의 上國이 되는 진나라의 요새가 이 촉도를 따라서 있다는 것이다. 09.03.02.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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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헌석

촉국은 바미얀과 카불 중심의 힌두쿠시산맥의 영역이 되고, 페샤와르(파셔PASHAI 혹은 신두푸SINDUFU-동방견문록, 波斯, 秦都, 錦都)가 秦나라(혹은 大震國 발해 -집사의 표현으로는 마하친)의 수도가 되는 것이다. *발해란 밝해(발흐, 밝흐, 발크)다. 밝은 남쪽의 陽海 즉 南海다. 즉 南華 南天竺 南神都가 된다. 이 남천축을 관장하시는 보살님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된다. 그래서 서유기에 삼장법사 일행의 보호 보살님을 '남해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09.03.02. 01:27

( - 촉국은 페샤와르이고, 진나라가 바미얀 즉 함양을 수도로 하는 나라다. 동방견문록의 PASHAI가 정확한 발해渤海의 표기다. 渤은 蒲沒切(폴, 포 혹은 파)이고, 海는 呼改切(해 혹은 하이) 혹은 許亥切(새 혹은 사이의 설전음이니 영어로 표기하면 정확하게 SHAI가 된다)이다. 동방견문록의 PASHAI는 정확하게 渤海의 발음이다. 놀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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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헌석

'西 當 太 白 有 鳥 道,/ 서쪽 태백산 새(鳥) 길 따라 可 以 橫 絶 峨 眉 嶺。/ 겨우 아미산 올랐네.' - 이 문장도 바른 번역은 '서쪽 태백령의 새길(鳥道) 따라 어찌 아미령을 가로질러 간다는 말인가'가 되겠다. 힌두쿠시산맥의 태백령과 아미령이라는 말을 섬서성의 태백산과 그 아래 사천성 방향의 아미산으로 변경 조작한 혐의가 짙다. 所 守 或 匪 親,化 為 狼 與 豺,/ 지키는 이가 가까운 친한 이가 아니면 언제 이리 승냥이로 변할지 몰라 09.03.02. 01:29

( - 원문을 확인해보면 可 以 橫 絕 峨 眉 巔(산꼭대기 전)인데, 그 주석에 峨 眉 嶺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부주의하게 그대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래서 ‘서쪽 태백산의 새길(鳥道) 따라 어찌 아미산을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말인가?’가 바른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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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헌석

 

劍 閣 - 한헌석글방 1호 관서별곡 분석의 말 뜻 풀이에 나온 검각을 인용한다. '검각 : 장안(평양, 현 쿠차 - 오류다. 함양 현 바미얀이 맞다.)에서 촉(힌두쿠시)으로 가는 길인 대검과 소검 두 산의 요충지' - 원래 검각은 함양(발흐)에서 촉의 관중(소관중-페샤와르를 의미한다고 보임-타림분지의 대관중에 대비해서 - 이제 관중은 현 바미얀으로 정확히 비정되었다.)으로 가는 힌두쿠시의 촉도에 있는 요새를 지리이동 조작을 한 서안(함양)에서 사천성(성도)가는 길목의 대검산과 소검산의 요충지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관서별곡을 분석할 때 필자도 헷갈려서 쿠차로 억지 해설을 했던 것이다. 죄송하다. 09.03.02. 02:08

 

 

 

 

- 촉도난은 당현종이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서 바미얀에서 페샤와르로 피난하는 길이 멀고도 험한 것을 노래한 것이라는 것이 여러 해설자들의 중론이다. 이백 자신의 고향 페샤와르로 가는 길이 험하다는 것을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자부심도 담겨 있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전세계의 지식계가 이백의 고향이 페샤와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바미얀에서 페샤와르 가는 길(촉도)을 이백만큼 잘 그려낼 시인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촉도난이 1200년 동안 독특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먼저 이백의 출신지부터 한번 살펴보자. 브리태니카백과사전의 이백조에서 인용한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촉(蜀)의 면주(綿州:지금의 쓰촨 성[四川省] 창밍 현[彰明縣])에서 출생했다는 설, 5세 때 아버지와 함께 서역에서 이주해왔다는 설, 아버지가 상인이었다는 설, 서북 지방의 이민족이었다는 설 등 일정하지 않다.’

 

 

- 브리태니카의 설명은 서정주의 귀촉도의 구도와 의도와 완전 동일하다. 파촉 3만리 서역 3만리의 모가지가 가느다란 양반 시인 이태백의 이야기를 브리태니카가 그대로 베낀걸까? 어쨌든 서북쪽의 서역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현 쓰촨성의 창밍현으로 이주해와서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해설가와 설명가들은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다. 이백의 시에서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출신을 어떻게 서술했는지 살펴보자. ‘이백의 삶과 문학’/고려대학교출판부,이해원지음의 P29를 인용한다.

 

 

‘이백 자신의 견해를 살펴보면 제고산일인원단구산거(題高山逸人元丹丘山居)에서

 

내 고향은 본래 자운산이다 本家紫雲山

 

라고 하였는데, 자운산은 사천 면주 창명현 서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면양에 속한다. 그러나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는

 

저는 농서의 평민입니다 白隴西布衣

 

라고 하여, 그의 시문에 각기 서로 다르게 진술되어, 그의 출생지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상안주배장사서(上安州裴長史書)에서는

 

저의 본가는 금릉으로, 대대로 지체가 높은 집안이었으나, 저거몽손의 난을 만나, 함진(낙양 근처의 함양 - 저자의 오류, 현재도 함양은 서안의 바로 옆에 있다. 현 바미얀 함양을 말하는 것이다.)으로 도망하여, 벼슬을 하며 살았습니다.

白本家金陵, 世爲右姓, 遭沮咸秦, 因官寓家’

 

 

 

-원래 이백은 남조 양凉나라 태조 무소왕武昭王의 9대손이라고 한다. 남조의 수도는 현 호탄(금릉金陵, 건강建康)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원 본가는 금릉이라고 한 것이다. 난을 만나서 현 바미얀 지역으로 피난왔다가 페샤와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농서의 평민’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파미르(隴이라고 불렀다)의 서쪽 현 페샤와르 지역에서 관직 없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리태니카의 ‘촉 면주 설, 서역 이주 설, 서북 이민족 설 등 일정하지 않다’고 하는 설명은 참 인상적이다. 참으로 구차하다. 일정하지 않은 것은 그대들 조작세력들의 조작이 일정하지 않게 해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뿐이다. 이백은 일정하게 파슈(페샤와르) 출신인 것이다. 서북 이민족 설은 쇄엽 설인데, 이는 순전히 현대 중국의 곽말약파들이 날조해낸 것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 지리이동을 해놓고, 그 실상을 숨기기 위해서 갖은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 최고의 시인 이백의 출신지도 하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렇게 무지했다는 말인가?

 

 

26세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 촉을 떠나 중원으로 들어간다. 그때까지의 시가 20여 수 남아있는데, 모두 아미산과 파촉(파슈-페샤와르)의 풍물을 읊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으로 농서의 자운산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도 많다는 말인가? 무슨 말이 그렇게도 일정하지 못하다는 말인가?

출처 : 한헌석의 천하사
글쓴이 : 꿈꾸는 소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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